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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철학자 9편 스피노자, 자연 속에서 찾는 자유의 기술

by 로지스틱 2025. 9. 4.

스피노자, 자연 속에서 찾는 자유의 기술 (출처 픽사베이)

 

 

 


1. 신과 자연의 동일성, 범신론의 뜻과 오해

스피노자의 철학은 범신론이라는 말로 요약됩니다. 그는 신을 세상과 분리된 인격 존재로 보지 않고, 신=자연이라는 등식으로 설명했습니다. 여기서 자연은 숲이나 강 같은 풍경만이 아니라, 사물과 마음을 움직이는 보편적 법칙의 전체를 가리킵니다. 우리는 그 법칙 안에서 태어나고 자라며 생각합니다. 비가 내리면 젖고, 불에 대면 뜨겁듯, 사람의 생각과 감정도 일정한 원인과 결과를 따라 흘러갑니다. 스피노자는 이 연결을 “필연”이라 불렀습니다. 필연은 운명론처럼 체념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원인을 아는 만큼 다르게 살 길이 열린다는 뜻입니다. 병의 원인을 알면 치료법을 찾듯, 마음의 원인을 알면 고통을 줄이고 기쁨을 늘릴 수 있습니다. 그는 신을 두려움과 보상으로 사람을 흔드는 존재가 아니라, 알아갈수록 평정을 주는 질서로 이해했습니다.

이 관점은 종종 차갑게 들립니다. “신이 자연 법칙이라면 위로는 어디서 오는가?”라는 반응도 나옵니다. 스피노자의 대답은 단순합니다. 위로는 현실을 왜곡하지 않을 때 더 깊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기분을 추측하기보다, 삶을 움직이는 원인을 차근히 밝히고 지적인 기쁨을 늘리면 마음은 안정됩니다. 그는 기적보다 이해를, 충돌보다 설명을 신뢰했습니다. 번개가 무섭다면 신의 노여움을 상상하기보다, 번개의 이유와 대처법을 배우는 편이 실제 위로가 됩니다. 이 태도는 신앙을 부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지에서 오는 공포를 덜어 주기 위해 제시되었습니다. 스피노자의 범신론은 결국 이렇게 말합니다. 세계는 혼란스러운 우연의 더미가 아니라, 이해 가능한 연결의 그물이며, 그 연결을 알아갈수록 우리는 덜 흔들린다—이 점에서 그의 사상은 오늘의 과학적 태도, 생활의 합리성과도 자연스럽게 손을 맞잡습니다.

 

 

2. 자유와 필연의 화해, 이해를 통한 해방

스피노자가 말하는 자유는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자유는 필연을 이해할수록 넓어지는 능동성입니다. 그는 사람의 마음을 ‘정서(감정)의 예속’과 ‘이성의 자유’로 구분했습니다. 배고프면 예민해지고, 비교하면 우울해지고, 위협을 느끼면 분노가 솟습니다. 이때 마음은 외부 자극에 끌려다니는 수동 상태입니다. 반대로 원인을 이해하고, 목적을 분명히 하고, 내 힘으로 바꿀 수 있는 부분에 행동을 붙이면 능동으로 옮겨갑니다. 스피노자는 마음의 기초 에너지를 “자기 보존의 경향”이라 보았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살아가려는 힘을 갖고 있고, 이 힘이 적합한 만남을 통해 커질 때 기쁨이, 파괴적 만남을 통해 줄어들 때 슬픔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자유의 첫걸음은 내 힘을 키우는 만남을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일입니다. 수면과 음식, 관계와 지식, 일과 휴식의 배치를 조정하면 정서의 파도가 낮아지고, 이성의 등불이 켜집니다.

스피노자는 감정을 적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감정은 몸과 마음의 상태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신호에 즉시 휩쓸리면 예속이 길어집니다. 그는 신호를 개념으로 번역하라 했습니다. “지금 분노한다”에서 멈추지 말고 “무엇이 내 안전감·존중감·공정감에 충돌했는가”로 바꾸어 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원인을 개념으로 붙잡으면, 반응은 느려지고 선택지는 넓어집니다. 스피노자는 이 과정을 통해 작은 능동적 기쁨을 축적하라고 권했습니다. 오늘의 한 문장 공부, 한 번의 정리, 한 사람과의 좋은 대화처럼 내 힘을 늘리는 선택을 쌓는 겁니다. 이해가 늘수록 무지에서 오는 두려움은 줄고, 타인과 세계를 원한이 아닌 인식으로 대하게 됩니다. 여기서 자유는 나 홀로의 독립이 아니라, 세계의 질서와 나의 힘이 정합적으로 맞물린 상태를 뜻합니다. 그래서 그의 자유는 조용하지만 강합니다.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원인을 밝혀 다르게 반응하는 기술—그 자체가 스피노자가 말한 해방입니다.

 

 

3. 국가와 관용, 안전과 자유의 질서

스피노자는 사상의 자유를 강하게 옹호했습니다. 그는 표현의 자유와 관용이 없으면 국가가 쉽게 폭력으로 기울고, 사람들의 마음이 위선과 공포로 잠식된다고 보았습니다. 금지와 검열은 겉으로 질서를 세우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불만을 숨은 곳에 쌓아 폭발의 위험을 키웁니다. 반대로 시민이 서로 다른 생각을 안전하게 드러낼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하면, 갈등은 기록과 토론 속에서 다뤄집니다. 법은 믿음을 강제로 바꾸려 들기보다, 폭력과 사기를 막고 약속을 지키게 하는 장치가 되어야 합니다. 스피노자의 정치철학은 이성의 평정이 개인의 덕목에만 머물지 않고, 제도의 설계로 옮겨가야 함을 보여 줍니다. 공직의 권한은 분산되고, 결정 과정은 공개되며, 이해관계는 분리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사상의 자유를 지키는 최소한의 울타리입니다.

그는 또한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주장했습니다. 믿음은 양심의 영역이고, 국가는 시민의 안전과 공동선을 다루는 기구입니다. 두 영역이 서로를 지배하려 들면, 믿음은 강요로 변하고 국가는 신비의 언어 뒤에 책임을 숨기게 됩니다. 스피노자는 시민이 법을 통해 보호받는 일상의 자유—말할 자유, 모일 자유, 일할 자유—를 누릴 때 국가가 강해진다고 여겼습니다. 자유로운 비판은 국가를 약하게 만드는 독이 아니라, 오류를 바로잡는 면역 체계입니다. 이 생각은 오늘의 회사·학교·지역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절차가 열려 있고, 이유가 설명되며, 다른 의견이 처벌이 아닌 토론으로 다뤄질 때 구성원은 위축되지 않습니다. 위축이 줄면 창의와 신뢰가 자라고, 신뢰는 안전을 낮추지 않고도 규제의 강도를 줄이는 효과를 냅니다. 스피노자의 결론은 간명합니다. 개인의 자유와 공동의 안전은 경쟁하지 않습니다. 이해와 관용의 제도를 세우면 둘은 함께 커집니다.

 

 

출처

스피노자, 『에티카』

스피노자, 『신학정치론』

스피노자, 『정치론』

국내 대학 교양 철학 자료(근대 철학·스피노자 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