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험과 습관, 인과를 믿는 이유를 차분히 따져 보기
흄의 철학은 경험에서 시작합니다. 우리는 보고 듣고 만지는 경험으로 세상을 배웁니다. 그런데 경험만으로는 ‘왜’라는 질문, 즉 인과를 완전히 증명할 수 없습니다. 불씨가 종이에 닿으면 불이 붙는 장면을 수없이 보았다고 해서, 다음에도 반드시 그럴 것이라고 논리만으로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흄은 이 지점에서 솔직했습니다. 인과를 믿는 힘은 엄밀한 증명이 아니라 습관과 반복에서 나온다고 말했습니다. 비슷한 일이 여러 번 이어지면, 우리 마음은 자연스럽게 “또 그럴 거야”라고 기대를 만듭니다. 이 기대 덕분에 우리는 내일을 준비할 수 있고, 생활은 부드럽게 굴러갑니다. 흄은 인과를 부정하려 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인과에 대한 우리의 심리적 근거를 밝혀, 과도한 확신과 성급한 단정을 경계하자고 했습니다.
이 태도는 공부와 일에 곧장 도움이 됩니다. 데이터를 많이 모았다고 해서 필요 충분이 자동으로 성립하는 것은 아닙니다. 숫자와 사례를 보며 “지금 보이는 것은 상관인지, 진짜로 원인인지”를 구별하려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제품 피드백이 좋았다는 이유만으로 그 성공이 광고 때문인지, 시즌 효과인지, 가격 인하 때문인지 섣불리 못 박지 말아야 합니다. 흄의 권고대로라면, 우리는 결론을 내리기 전에 ① 관찰 가능한 사실을 먼저 정리하고 ② 가능한 다른 원인을 열거한 뒤 ③ 그 원인들이 남기는 흔적을 찾아 차근히 지워 가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실수는 줄고, 대화에서 감정의 충돌도 줄어듭니다. 상대를 이기려는 말 대신, “우리가 아직 모르는 것은 무엇인지”를 함께 적어 내려가기 때문입니다.
흄은 감정의 역할도 강조했습니다. 사람의 판단은 차가운 이성만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관심, 기대, 두려움 같은 감정이 주의의 방향을 정합니다. 그래서 그는 “깨끗한 판단”을 위해 감정을 없애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감정이 들어오는 통로를 투명하게 보자고 했습니다. 회의록에 사실과 해석을 나눠 적고, 숫자 표 밑에 “이 결론을 믿게 만드는 느낌은 무엇인지”를 한 줄로 쓰는 것만으로도 판단의 흔들림이 줄어듭니다. 흄의 경험론은 결국 이렇게 말합니다. 지식은 바깥에서 들어오는 재료(경험)와, 안에서 움직이는 힘(습관·감정)이 함께 만든다. 그러니 증거와 마음을 동시에 살피는 훈련이 필요하다—이 균형이 그의 철학의 출발점입니다.
2. 회의의 기술, 귀납의 한계와 실생활 점검표
흄은 “귀납의 문제”를 알기 쉽게 밝혔습니다. 과거에 반복된 일이 미래에도 그대로 일어난다고 보장하려면, “자연은 항상 같은 방식으로 움직인다”는 원리를 먼저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원리 자체를 또다시 과거의 반복으로만 뒷받침한다면, 논증은 빙글빙글 제자리를 돕니다. 흄은 여기서 두 가지 태도를 제안합니다. 첫째, 과도한 확신을 내려놓고 가능성의 언어로 말하기. 둘째, 생활 속 결정에는 실용적 기준을 세우기. 과학·경영·정책 같은 영역에서 우리는 종종 완벽한 확실성 없이도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흄은 이때 “얼마나 충분한가?”를 판단하는 실천적 척도를 세우라고 조언합니다.
그 척도를 오늘의 체크리스트로 바꿔 보겠습니다.
① 샘플: 보인 것이 전체를 대표하는가? 편향이 끼지 않았는가?
② 대안설명: 같은 현상을 설명할 다른 이유가 몇 개인가? 그중 무엇을 이미 배제했는가?
③ 반증가능성: 내가 틀렸다면 어떤 관찰이 나올까? 그 관찰을 확인할 계획이 있는가?
④ 손익균형: 틀릴 비용과 맞을 이익은 어떤가? 비용이 크면 더 많은 증거를 모을 이유가 커진다.
⑤ 갱신계획: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 어떻게 결론을 고칠 것인지 미리 정해 두었는가?
이 다섯 칸을 통과하면, 우리는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는 솔직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행동 가능한 판단을 얻습니다. 흄의 회의는 파괴가 아닙니다. 겸손한 결론을 내리게 하고, 새 증거가 오면 기꺼이 수정하게 만드는 태도입니다. 그래서 흄을 배우면, 회의실에서 목소리를 키울 필요가 줄어듭니다. 강한 확신보다 갱신 가능한 계획이 신뢰를 만듭니다. 흄이 종교의 기적 이야기를 다룰 때도 같은 기준이 작동했습니다. 그는 기적을 미리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주장을 믿을 만한 증거의 무게가, 자연 법칙에 대한 수많은 경험을 뒤집을 만큼 충분한가?”를 물었습니다. 기준은 일관되고, 태도는 차분합니다. 믿음의 내용이 무엇이든, 증거의 질을 먼저 보자는 제안입니다.
흄은 또 하나의 유명한 구분을 남겼습니다. 사실 판단(있는 그대로)과 가치 판단(그래야 한다)의 구분입니다. “이 일은 좋지 않다”에서 곧바로 “그래서 벌해야 한다”로 넘어갈 때, 우리는 종종 사실–가치–정책의 건너뛰기를 합니다. 흄의 경고를 적용하면 절차가 생깁니다. 먼저 사실: 무슨 일이 있었는가. 다음 가치: 왜 나쁘거나 좋은가, 어떤 원칙이 걸려 있는가. 마지막으로 정책: 그 원칙을 살리려면 무엇을 할 것인가. 단계를 지키면, 감정의 급가속을 줄이고 공정한 합의에 가까워집니다. 이것이 흄이 남긴 회의의 기술입니다. 의심을 즐기자는 말이 아니라, 서두르지 말자는 말입니다.
3. 정념과 도덕감, 공감이 만드는 공동선의 실천
흄의 윤리학은 공감(동감)에서 출발합니다. 사람은 타인의 기쁨과 고통을 거울처럼 비추는 능력을 타고납니다. 이 능력이 바로 도덕 판단의 바닥입니다. 우리는 어떤 행동이 사회에 유용하고 호의적일 때 그것을 선하다고 느낍니다. 반대로 해롭고 이기적인 행동은 마음을 찌푸리게 합니다. 흄은 선을 감정의 표로만 보지 않았습니다. 공감은 우연한 기분이 아니라, 공동체를 유지하게 만든 자연스러운 장치입니다. 그래서 그는 도덕의 기준을 멀리서 찾지 말고, 가까운 삶에서 확인하자고 했습니다. 약속을 지키기, 고의적 상해를 금지하기, 감사와 배려를 표현하기 같은 기본 규칙은 공감의 지속적 성과입니다.
이 공감의 틀을 오늘의 조직과 관계에 적용해 보겠습니다. 첫째, 규칙의 이유를 설명하기. 규칙이 왜 공동의 유용을 높이는지 사례로 보여 주면, 사람들은 ‘강요’ 대신 ‘납득’으로 움직입니다. 둘째, 칭찬과 피드백의 균형. 흄식으로 말하면, 사람의 도덕감은 호의를 먹고 큽니다. 잘한 일을 구체적으로 칭찬하면, 같은 행동은 더 자주 일어납니다. 셋째, 신뢰의 경제. 거래비용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계약서의 장수보다 평판과 일관성입니다. 약속과 마감을 지키고, 실수를 숨기지 않고, 수정 기록을 남기는 문화는 공감을 강화하고 공동선의 이익을 키웁니다.
흄은 자아에 대해서도 신선한 비유를 남겼습니다. 자아는 단단한 알맹이가 아니라, 경험의 다발이라는 견해입니다. 기억, 습관, 감정, 관계의 실타래가 엮여 ‘나’가 됩니다. 이 생각은 우리에게 두 가지 용기를 줍니다. 하나, 나는 고칠 수 있는 존재라는 용기. 습관을 바꾸면 자아의 결이 달라집니다. 둘, 타인에게 관대해질 수 있는 용기. 상대의 오늘은 그가 걸어온 경험의 다발이 만든 결과입니다. 정죄보다 설명과 기회가 관계를 살립니다. 그래서 흄의 윤리는 차갑지 않습니다. 그는 회의와 공감을 함께 가르칩니다. 의심으로 과열을 식히고, 공감으로 온기를 회복합니다. 이렇게 균형을 잡으면, 우리는 도덕을 설교가 아닌 생활 기술로 배웁니다. 회의는 판단을 맑게 하고, 공감은 행동을 부드럽게 합니다. 이 둘을 함께 익힐 때 공동체는 가벼우면서도 단단해집니다.
출처
데이비드 흄,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
데이비드 흄, 『인간 오성에 관한 탐구』
데이비드 흄, 『도덕 원리의 탐구』
국내 대학 교양 철학 자료(근대 경험론·흄 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