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쿠로스는 흔히 ‘즐거움을 좇는 철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오해가 따라옵니다. 먹고 마시는 쾌락을 끝없이 늘리는 삶을 말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입니다. 에피쿠로스는 그런 삶을 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고통을 줄이고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즐거움을 말했습니다. 오늘 4편에서는 에피쿠로스의 핵심을 쾌락과 평온의 뜻, 욕망을 가르는 기준과 실천법, 우정과 두려움 줄이기의 세 갈래로 차분히 설명드리겠습니다. 어려운 전문용어는 피하고, 일상의 말로 풀어 쓰겠습니다.
1. 쾌락과 평온의 뜻을 바로 세우기
에피쿠로스가 말한 쾌락과 평온은 감각의 폭발이 아니라 고통이 사라진 뒤 남는 고요한 만족입니다. 배가 고플 때 한 끼 식사가 주는 안도감, 목이 마를 때 맑은 물 한 잔이 주는 안정감처럼 결핍이 해소될 때 찾아오는 담백한 즐거움입니다. 그는 이런 상태를 최고의 선으로 삼았습니다. 왜냐하면 고통이 사라지면 마음은 차분해지고, 차분한 마음은 다른 선을 누릴 토대를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이 즐거움은 짧게 타오르는 흥분이 아니라 오래 가는 안정입니다. 그래서 에피쿠로스는 호화로운 음식보다 소박한 식사를, 과한 향락보다 평범한 휴식을 더 높이 평가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기준은 양이 아니라 적합함입니다. 즐거움을 키우려고 계속 더 강한 자극을 찾아 나서면, 금세 지치고 다음 자극을 찾아 헤매게 됩니다. 그 길은 오히려 고통을 불러옵니다. 반대로 몸과 마음이 요구하는 만큼만 충족하면, 만족은 빨리 오고 오래 머무릅니다. 에피쿠로스가 즐거움을 말하면서도 절제를 강조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절제는 억지로 참는 고통이 아니라, 충분함을 아는 지혜입니다. 충분함을 알면 비교와 욕심이 줄고, 마음의 파도가 잦아듭니다.
또 하나의 오해를 풀어야 합니다. 에피쿠로스는 세상과 담을 쌓자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말과 우정을 소중히 여겼고, 정원에서 제자들과 함께 대화하며 살았습니다. 떠들썩한 명예 경쟁이나 끝없는 재산 쌓기가 마음의 평온을 깨뜨린다고 보았을 뿐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과 관계가 평온을 도와주느냐, 흔들어 놓느냐를 살피라는 뜻입니다. 이 기준으로 보면, 화려하지 않은 일이라도 마음을 단단하게 해 주면 좋은 삶에 가깝습니다. 반대로 겉으로 빛나는 자리라도 불안을 키운다면 멀리해야 합니다. 에피쿠로스의 쾌락은 그래서 품위와 절제, 고요와 만족을 함께 부르는 말입니다.
2. 욕망을 가르는 기준과 일상의 실천
에피쿠로스가 제시한 욕망 분류는 일상을 정리하는 간단하고도 강력한 틀입니다. 첫째, 자연적이면서 꼭 필요한 욕망입니다. 물, 빵, 옷, 잠처럼 생존과 건강을 지키는 데 꼭 필요한 것들입니다. 이 욕망은 적당히 채우면 고통이 사라지고, 즐거움이 찾아옵니다. 둘째, 자연적이지만 꼭 필요하지는 않은 욕망입니다. 더 맛있는 음식, 더 부드러운 침구처럼 삶을 조금 더 편하게 해 주지만 없다 해도 큰 문제가 없는 것들입니다. 셋째, 자연적이지도, 필수도 아닌 욕망입니다. 끝없는 명예, 과시, 끝을 모르는 부와 권력 경쟁처럼 마음을 흔드는 대상입니다. 이 마지막 부류는 채워도 채워도 공허함이 남으니, 가능한 한 멀리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이 분류를 오늘의 생활에 대입해 보겠습니다. 하루의 지출을 세 칸으로 나눠 간단히 기록해 보십시오. 첫째 칸은 필수, 둘째 칸은 있으면 좋음, 셋째 칸은 불필요입니다. 일주일만 써도 흐름이 보입니다. 필수에 해당하는 지출은 삶을 안정시키고, 있으면 좋음은 기분을 살짝 북돋고, 불필요는 다음 날 피로와 후회를 남길 때가 많습니다. 목적은 죄책감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습관을 투명하게 보기입니다. 보이기 시작하면 고치기는 훨씬 수월합니다. 이 단순한 기록만으로도, 우리는 즐거움을 늘리고 고통을 줄이는 선택을 더 자주 하게 됩니다.
관계에서도 같은 기준이 유효합니다. 내 말을 들어 주고, 어려울 때 곁에 서 주는 사람과의 만남은 자연적이면서 필요한 기쁨입니다. 반대로 비교와 경쟁만 남는 관계는 불필요한 욕망을 자극해 마음을 소모시킵니다. 에피쿠로스는 우정을 특히 귀하게 여겼습니다. 마음의 평온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안전망이기 때문입니다. 집과 밥이 몸을 지키듯, 대화와 신뢰가 마음을 지킵니다. 그래서 그는 멀리 있는 명성보다 가까운 식탁의 대화를 더 높이 보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할 수 있는 실천은 간단합니다. 하루 10분이라도 소중한 사람과 안부를 나누고, 짧은 문장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하는 것입니다. 작은 말이 마음의 벽을 낮추고, 불안을 줄입니다.
마지막으로 시간의 배치를 보겠습니다. 끝도 없는 할 일 목록은 즐거움을 빼앗습니다. 에피쿠로스식 정리는 “해야 할 것” 앞에 “왜”를 붙이는 일입니다. 왜 해야 하는지 적어 보면, 목록의 절반은 자연스럽게 줄어듭니다. 그리고 남은 일은 짧게 쪼개 숨을 틔웁니다. 25분 집중, 5분 쉼 같은 간단한 리듬이 평온을 돕습니다. 중요한 건 성과 지표가 아니라 고통을 줄이고 만족을 늘리는 흐름입니다. 이렇게 욕망·관계·시간을 정리하면, 쾌락은 더 깊고 조용한 기쁨으로 자라납니다.
3. 우정과 두려움 줄이기, 평온을 지키는 마지막 열쇠
에피쿠로스의 철학에서 우정과 두려움 줄이기는 평온을 지키는 마지막 열쇠입니다. 그는 사람이 불행해지는 큰 원인으로 신과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그리고 미래에 대한 과도한 상상을 들었습니다. 두려움은 생각의 빈자리를 과장으로 채우게 만듭니다. 그래서 그는 먼저 죽음에 대한 태도를 바로잡았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느낌과 생각으로 세상을 만납니다. 죽음은 느낌과 생각이 멈추는 상태입니다. 그러니 죽음은 살아 있는 우리에게 오지 않은 것이고, 우리가 죽는 순간에는 느끼는 주체가 없으니 두려움도 없다는 설명입니다. 이 설명은 죽음을 가볍게 보자는 뜻이 아니라, 죽음의 그림자에 짓눌려 삶을 놓치지 말자는 권유입니다. 오늘의 따뜻함을 느끼고, 지금 옆 사람의 손을 잡는 시간이 더 소중하다는 말입니다.
신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에피쿠로스는 신이 있다면 완전하고 평온한 존재일 것이라 보았습니다. 완전하고 평온하다면, 신은 인간을 괴롭히거나 보복하지 않습니다. 하늘의 뜻을 핑계로 서로를 위협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 생각은 사람들 마음에서 불필요한 공포와 미신을 덜어 내었습니다. 두려움이 줄면 사람은 온화해지고, 타인을 함부로 몰아붙이지 않습니다. 평온은 마음 안에서만 자라지 않습니다. 두려움을 줄이는 설명과 대화가 사회의 긴장을 낮춥니다.
여기에 우정이 더해지면 평온은 비로소 뿌리를 내립니다. 우정은 취향이 같은 동료를 뜻하는 말이 아닙니다. 서로의 선한 의도와 절제를 믿고 지켜 보는 약속입니다. 에피쿠로스의 정원에는 화려한 교실도, 높은 단상도 없었습니다. 그 대신 함께 먹고, 함께 걷고, 함께 말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큰 선물보다 꾸준한 안부, 멋진 말보다 정직한 경청이 우정을 단단하게 만듭니다. 우정은 마음의 보험입니다. 일이 틀어졌을 때, 몸이 아플 때, 판단이 흔들릴 때, 내 곁의 사람은 현실적인 도움과 정서적인 안정을 줍니다. 평온은 그래서 개인의 기술이면서 관계의 작품입니다.
마지막으로 미래에 대한 상상을 줄이는 연습을 권합니다. 아직 오지 않은 일은 수없이 많은 결과를 가집니다. 그중 가장 나쁜 그림만 붙잡으면 오늘이 무너집니다. 에피쿠로스식 방법은 간단합니다. 첫째, 통제 가능한 것과 통제 불가능한 것을 구분합니다. 가능한 것에는 작은 행동을 붙이고, 불가능한 것에는 생각의 시간을 줄입니다. 둘째, 현재의 충분함을 적습니다. 오늘 먹은 따뜻한 식사, 맑은 공기, 한 통의 안부 메시지처럼 사소해 보이는 항목들이 불안의 속도를 늦춥니다. 셋째, 몸의 감각을 돌봅니다. 짧은 산책, 바른 호흡, 규칙적인 잠은 마음의 파도를 낮추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이런 단순한 연습이 쌓이면, 우리는 화려한 자극 없이도 고요하고 깊은 즐거움을 누리게 됩니다. 이것이 에피쿠로스가 말한 쾌락의 완성, 곧 평온으로 가는 길입니다.
출처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철학자 열전』 에피쿠로스 편
루크레티우스,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국내 대학 교양 철학 강의 자료(헬레니즘 철학·에피쿠로스 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