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성과 신앙의 조화, 같은 진리를 보는 두 길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성과 신앙이 서로 다투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무엇이 참이라면, 이성으로 따져 얻은 결론과 계시로 받아들인 믿음은 결국 같은 진리를 가리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수도원과 대학에서 공부하며, 스승과 토론으로 생각을 다듬었습니다. 당시에는 고대 사상,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이 새로 알려지던 때였습니다. 어떤 이들은 철학과 신학이 부딪힌다고 걱정했지만, 아퀴나스는 철학을 도구로 삼아 신학의 내용을 더 분명히 설명하려 했습니다. 이성은 개념을 가르고, 정의를 세우고, 논증의 길을 밝힙니다. 신앙은 사람이 한계를 넘어 궁극적 목적을 바라보게 합니다. 둘은 서로의 빈자리를 채우며, 인간이 할 수 있는 이해의 폭을 넓혀 줍니다.
그는 질문을 정리하고, 반대 의견을 소개하고, 답을 제시하는 분명한 형식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형식은 어렵게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사고의 순서를 보여 줍니다. 먼저 핵심 질문을 적고, 그에 대한 서로 다른 주장을 정리합니다. 그리고 각각의 근거를 확인한 뒤, 모순 없이 설 수 있는 결론을 고릅니다. 이 과정에서 이성과 신앙은 자리 싸움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이 이해로 닿을 수 있는 범위를 겸손하게 인정하고, 이해로 닿지 않는 영역에서 신앙이 비추는 빛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세워집니다. 아퀴나스에게 중요한 것은 어느 한쪽의 승리가 아니라 질서 있는 협력입니다. 이 협력이 있을 때, 학문은 혼란이 아니라 평형을 얻고, 사람의 삶은 단단한 기준을 마련합니다. 그는 이 기준을 바탕으로 우주와 인간, 덕과 법, 사회와 공동선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주제를 차례로 다루었습니다.
2. 자연법과 법의 질서, 옳고 그름을 가늠하는 기준
아퀴나스의 법 사상에서 중심은 자연법입니다. 자연법은 특별한 규정이 없어도 사람의 이성이 알아차릴 수 있는 기본 규범을 말합니다. 생명을 보존하고, 진실을 말하고, 약속을 지키고, 공동선을 해치지 말아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여기에 속합니다. 그는 모든 법의 바탕에 더 큰 질서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변하지 않는 질서를 영원법, 이 질서가 인간 이성 속에 비친 것을 자연법, 사람들이 사회를 꾸리며 구체화한 규정을 인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신앙 전통에서 건네지는 지침을 신법으로 구분해, 서로의 자리를 정리했습니다. 이 구분은 복잡해 보이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간단한 원리로 작동합니다. 인법이 공동선과 진실을 해치면, 그 법은 이름만 법일 뿐 정당성을 잃습니다. 반대로 공동선을 지키고 약자를 보호하는 규정일수록 자연법의 뜻을 잘 담아낸 법이 됩니다.
이 사유는 오늘의 사회에도 유효합니다. 제도를 만들 때 무엇을 먼저 고려해야 하는지, 사람의 존엄을 해치지 않는지, 공정한 절차가 갖추어졌는지 따져보는 기준이 됩니다. 직장과 학교, 행정의 현장에서 규칙이 충돌할 때, 우리는 먼저 자연법적 기준을 꺼내야 합니다. 사실의 확인, 이해관계의 분리, 기록과 공개, 이유 설명 같은 절차는 자연법의 정신을 구체화한 도구입니다. 아퀴나스는 또한 양심을 강조했습니다. 양심은 단순한 느낌이 아니라, 이성이 비추는 빛 아래에서 선과 악을 분별하려는 내적 판단입니다. 그래서 양심을 지키는 일은 개인의 감정으로 흐르지 않도록, 배움과 습관으로 다듬어야 합니다. 자연법을 알면 규칙을 따르는 이유가 분명해지고, 이유가 분명해지면 규칙은 억압이 아니라 공동의 안전망이 됩니다. 이렇게 법의 질서가 세워질 때 개인의 자유도 더 잘 지켜집니다. 자유는 제멋대로 함이 아니라, 선으로 향할 수 있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3. 덕과 습관의 교육, 일상의 선택을 바꾸는 방법
아퀴나스의 윤리 사상은 덕을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그는 사람이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습관이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덕은 한순간의 결심이 아니라, 선한 선택을 반복하며 몸에 밴 능력입니다. 그는 널리 알려진 네 가지 기둥, 곧 사려·정의·절제·용기를 다루었습니다. 사려는 상황을 읽고 알맞게 판단하는 힘, 정의는 각자에게 마땅한 몫을 주는 질서, 절제는 욕망을 다루는 기술, 용기는 두려움을 이겨 옳은 일을 밀어붙이는 담대함입니다. 여기에 신앙·희망·사랑을 더해 삶의 지향을 높였습니다. 이 덕들은 따로 자라지 않고 서로를 돕습니다. 사려가 깊어지면 용기는 무모함에서 벗어나고, 절제가 세워지면 정의는 강해집니다.
그는 덕을 기르는 방법도 구체적으로 제안했습니다. 첫째, 목적을 분명히 적습니다. 왜 이 일을 하는지, 누구를 돕기 위한 것인지 한 줄로 정리합니다. 둘째, 행동을 쪼갭니다. 큰 결심 대신 오늘 가능한 작은 걸음으로 나눕니다. 셋째, 기록을 남깁니다. 성공과 실패를 구분하지 말고, 사실을 짧게 기록합니다. 넷째, 되돌아보기를 습관화합니다. 하루의 끝에 말의 온도, 약속의 시간, 돈의 쓰임, 분노의 처리 같은 항목을 스스로 점검합니다. 이런 단순한 반복은 감정에 끌려다니지 않게 하고, 판단의 등불을 밝힙니다. 아퀴나스는 교육이란 정보의 나열이 아니라, 성품을 세우는 일이라고 보았습니다. 성품이 세워지면 자유는 넓어지고, 자유가 넓어지면 책임은 가벼운 짐이 아니라 기꺼운 선택이 됩니다. 덕은 결국 공동체를 위한 능력입니다. 가정과 학교, 일터에서 작은 공정과 작은 예의를 지킬 때, 우리는 서로의 자유를 더 잘 지켜 줍니다. 아퀴나스의 윤리는 이처럼 개인의 내면을 넘어 공동선으로 이어지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출처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
토마스 아퀴나스, 『이교도 대전』
중세 철학 개론 및 대학 교양 철학 자료(아퀴나스·스콜라 철학 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