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시리즈 20편 한나 아렌트 행위, 다원성, 그리고 공론장
인간의 조건: 노동·작업·행위, 다원성과 시작의 힘노동, 작업, 행위, 다원성이라는 네 단어를 먼저 적어 둡니다. 아렌트의 관심은 ‘철학자가 무엇을 아는가’보다 ‘인간이 어떻게 함께 사는가’에 있었습니다. 그녀는 인간의 활동을 세 갈래로 나눕니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반복의 순환을 ‘노동’, 세계에 비교적 오래 남을 인공물의 제작을 ‘작업’, 그리고 타인과 더불어 말하고 시작하며 관계를 새로 짜는 창발을 ‘행위’라 부릅니다. 노동은 필요의 압력에 종속되고, 작업은 도구와 계획의 질서에 의존하지만, 행위는 예측할 수 없는 자유의 공간에서만 가능해집니다. 아렌트는 바로 이 행위에 정치의 본령을 둡니다. 정치는 명령이나 통치 기술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말을 나누고 약속과 결정을 만들어 내는 ‘사이’..
2025. 9. 8.
세기의 철학자 19편 미셸 푸코 권력·지식, 규율, 그리고 자기배려
지식은 어떻게 권력이 되나: 담론, 에피스테메, 진리 체제, 계보학담론, 에피스테메, 진리체제, 계보라는 네 단어를 먼저 적어 둡니다. 푸코의 출발점은 간단합니다. “우리가 ‘사실’이라고 부르는 것은 언제, 어떤 말하기의 규칙 속에서 가능해졌는가?” 그는 지식을 머리 속의 관념이 아니라 담론—무엇을 말할 수 있고 무엇은 말하면 안 되는지, 누가 말할 자격이 있는지, 어떤 절차를 거쳐야 ‘근거’가 되는지—의 네트워크로 보았습니다. 어느 시대의 지식은 우연한 취향이 아니라 그 시대 전체를 관통하는 보이지 않는 바닥 규칙, 곧 에피스테메 위에서 성립합니다. 중세, 고전주의, 근대가 각각 다른 방식으로 사물을 분류하고 사람을 바라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푸코는 초기에 이를 “고고학”이라 불렀습니다. 묻혀 있..
2025. 9. 7.
세기의 철학자 18편 사르트르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실존이 먼저다: 본질, 자유, 책임, 그리고 악신앙실존, 본질, 자유, 책임이라는 네 단어를 먼저 적어 둡니다. 사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명제로 자신의 철학을 압축했습니다. 이미 정해진 인간의 본성이나 하늘에서 떨어진 설계도가 있고 그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뒤집은 것입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어떤 정의에 맞춰진 존재가 아니라, 선택과 행위를 통해 스스로의 의미를 만들어 가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자유는 선택지를 마음대로 고르는 얕은 임의가 아니라, 늘-이미-선택하고 있는 구조 그 자체입니다. 회사에 남을지, 그만둘지, 혹은 잠시 아무것도 하지 않을지—‘미루기’조차 하나의 선택이며, 그 책임을 피할 수 없습니다. 사르트르는 이 책임의 무게를 ‘버려짐’이라는 단어로 설명합니다. ..
2025. 9. 7.
세기의 철학자 17편 하이데거 존재 물음으로 되돌리기
존재를 다시 묻는 출발: 현존재, 세계-내-존재, 세인현존재, 세계내존재, 세인, 돌봄이라는 네 단어를 먼저 적어 둡니다. 하이데거의 문제의식은 간명합니다. 우리는 매일 ‘있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있다’가 무엇인지 잊고 산다는 것. 그는 이 망각을 깨우기 위해, 존재를 물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인간을 ‘현존재’로 부르며 해부를 시작합니다. 현존재는 세계 밖에서 사물을 구경하는 관찰자가 아니라, 이미 도구와 관계 속에 푹 젖어 살아가는 ‘세계-내-존재’입니다. 망치와 컵, 언어와 규칙은 머릿속 정의보다 손과 몸의 사용법으로 먼저 다가옵니다. 그래서 이해란 관념적 목록이 아니라, 이미-그러함의 익숙함 속에서 작동하는 능숙함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익숙함은 쉽게 ‘세인(사람들이 다 그러니까)’의 목소리로..
2025. 9. 7.
세기의 철학자 16편 니체 가치를 뒤집는 망치와 춤
1. 삶을 긍정하는 언어: 힘에의 의지, 초인, 영원회귀, 가치 전도힘, 의지, 긍정, 변신이라는 네 단어를 먼저 적어 둡니다. 니체의 말은 어렵게 들리지만, 바탕에는 단순한 물음이 있습니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기쁘고 강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입니다. 그는 삶을 억누르는 가르침보다, 살아 있는 몸의 리듬과 기쁨을 먼저 믿었습니다. 여기서 ‘힘에의 의지’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무례한 힘자랑이 아니라, 스스로를 더 넓히고 더 높이는 생명의 충동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어제의 나를 넘어 내일의 나를 만드는 추진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니체는 이 충동이 세계 곳곳에서 서로 부딪히고 어울리며, 새로운 가치와 형식을 낳는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완성된 진리를 우상처럼 모시는 대신, 늘 다시 묻고 다시 만드는 ..
2025. 9. 6.